파워풀 한우농가

육질 위주의 한우 개량에 매진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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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를 못 믿으면 한우를 어떻게 키우겠습니까”

<전남 영암 태호축산 김용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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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의 태호축산 김용복 대표는 약 20년간 ‘육질 위주의 한우 개량’에 매진해 왔고, 그 결과 지난해 열린 전국한우능력평가대회에서 ‘만점 한우’란 찬사를 이끌어 내며 ‘한우 명인’이 됐다. 상금 중 적지 않은 금액을 장학금 등으로 이웃들과 나눈 김 대표는 “좋은 한우를 길러 이웃들과 기쁨을 나눌 수 있어서 무엇보다 보람됐다”라고 전했다.

 


“마늘, 대파, 쪽파를 재배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니, 종자에 따라 그 가격이 하늘과 땅 차이더라고요. 그것을 보면서 종자의 중요성을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종자의 시대가 될 것이란 확신을 하게 됐죠.”
약 20년 전, 각시가 덜컥 계약한 한우농장 운영을 시작한 초보 한우인 김용복 대표가 처음부터 ‘한우 개량’에 정성을 쏟을 수 있었던 데는, 이런 귀한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당연히 한우 개량에 매진한 귀한 결과는 결코 그 성적에만 있지 않다.
“27~28개월령에 도달한 한우를 출하하면 좋은 성적을 내 줄것이란 확신이 있어요. 초음파 검사를 할 필요도 없어요. 어떻게 아느냐. 우리 농장 한우에 대한 믿음이죠. 우리 한우를 내가 못 믿으면 한우를 어떻게 키우겠어요.”
육질 위주의 한우 개량을 해 오던 김 대표는 얼마 전부터 육색 위주의 한우 개량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는 태호축산이 한번 더 거듭나는 데 일조할 것이다. 

‘우리 농장에서 1주일간 함께 지내봅시다’
초보 한우인이였던 김 대표가 지금 이렇게 한우 명인으로 거듭난 그 밑바탕에는 노력이란 단어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노력의 시간이 있었다. 혹자는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도 불렀단다.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해결해 내는 집념 역시 김 대표를 한우 명인의 반열에 올리는 데 역할을 했다. 이런 집념의 밑바탕에는 ‘한우가 태어나면 반드시 살려낸다’라는 굳은 의지가 있었다.
“처음에는 설사병으로 농장이 말이 아니었어요. 송아지 40두 중 30두가 설사로 죽었으니까요.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더 큰 문제는 백약이 무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설사 약을 직접 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설사에 좋다는 약이란 약은 모조리 사다가 연구했죠. 지금은 우리 농장에서 설사로 폐사하는 송아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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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김 대표가 집념으로 연구해서 발견해 낸 태호축산의 한우 사양관리와 한우 개량 비법인 급여 방법, 정액 확보 방법, 축사 운영 방법 등은 익히 언론 매체 등을 통해서도 공유가 됐다.
“우리 농장에서는 우방마다 사양관리 방법이 조금씩 달라요. 어제 한우를 출하했으면 오늘 또 달라지기도 하죠. 그러니 ‘이것이 비법’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가 사실은 어려워요. 그래서 사양관리 비법을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우리 농장에서 1주일간 함께 지내보자’라고 제안합니다.”

 

 

두 아들이 운영해 나갈 태호축산을 위해
약 6년전부터 김 대표는 두 아들과 함께 태호축산을 경영하고 있다.  두 아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또 두 아들이 인공수정도 배우고 마이스터 대학과 한우대학을 다니면서 한우인으로 능력을 채워가는 것이 얼마나 대견한지, 그 좋은 마음을 그대로 취재진에게 표현했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딱 하나예요.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 손으로 경영할 수 있는 규모 이상으로 키워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두 아들 역시 김 대표가 구축하고 만들어낸 길이 단순한 길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아버지가 정말 좋은 기반을 다져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어요. 아버지를 보면서 한우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어디에도 없는 훌륭한 스승님이 바로 옆에 있으니, 또 이만한 행운도 없죠. 아버지의 뜻을 잘 이어나가겠습니다.”
아들 대욱 씨의 다짐에 김 대표의 얼굴에 넉넉한 웃음이 번졌고, 그 웃음에 앞으로 20년, 30년을 한우인으로 살아갈 두 아들의 시간이 겹쳤다. 이날 태호축산엔 봄볕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