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한우농가 이야기

‘한우 너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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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 음메농장 장경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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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에 있는 음메농장의 장경화 대표가 중국 만주에서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으로 시집온 지 어느덧 20년 세월이 흘렀다. 중국에서는 일반 가정집에서 소를 키우는 일이 없었고, 그래서 처음 시집에서 마주한 한우는 그렇게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한우가 운명 같은 존재가 됐고, 평생 사랑할 친구가 됐다. 

 


유난히 길었던 여름장마가 끝났다. 하지만 음메농장 장경화 대표는 가을 폭우·폭풍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지난 장마 때 축사 앞 냇가에 물이 가득 찼었어요. 다행히 물이 넘치지 않아서 침수 피해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일기예보를 주시하며, 대비를 잘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네요.”

 

 

우유를 직접 먹이는 정성으로
음메농장의 시작은 2005년이다. 매운 시집살이를 끝내고 분가한 후,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매물로 나온 육우농장을 세를 얻어 운영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 
“남편은 육우농장 조사료 파종과 수확에 필요한 기계를 다루는 전문가였고, 평소에도 소를 기르고 싶어 했어요. 처음에는 겁도 났지만, 생각해보니 이만한 부업도 없겠다고 판단했어요.”
처음에 생후 7일 된 송아지를 사들여 우유를 먹여 키운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소를 키우는 일이 장 대표에게 천직으로 다가왔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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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실패할 거라고 했어요. 그래도 묵묵히 키워냈어요. 보람됐습니다.”
지금도 장 대표는 송아지가 태어나면 우유를 직접 먹여 키우는데, 여기에는 남부러움을 살 만한 이유도 있다. 
“우리 농장에서는 쌍둥이 송아지가 거의 매해 태어나고 있어요. 2007년 한우농장으로 축종을 변경한 후에도, 마찬가지예요. 올해도 쌍둥이가 태어났어요. 어미소가 두 마리를 모두 건사하기 어려워, 그중 한 마리는 제가 우유를 먹여 키웠습니다.”
물론 단순히 우유를 먹여서 키운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그만큼 장 대표가 정성을 들여 한우를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장 대표가 지금까지 큰 폐사 없이 한우 사양관리를 잘 하며, 천생 한우인이란 평가를 듣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를 키워본 적이 없었기에, 농장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세련된 방법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그저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죠. 아이들을 키우듯이, 그렇게 한우를 키워왔습니다. 그래서 한우가 너무 소중합니다.”

 

 

TMR로 한우를 건강하게 키우다
장 대표는 음메농장 한우가 건강하게 자라는 데는 무엇보다 TMR의 역할이 크다고 봤다. TMR 전문가인 장 대표의 남편 덕분에 음메농장에서는 처음부터 TMR을 한우에게 먹였다. 현재 음메농장에서는 약 3만 평 부지에 호밀, 총체보리, 라이그라스, 옥수수 사일리지 등의 조사료를 2모작하고 있다. 이는 음메농장이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는 양이다.
“한우는 반추동물이잖아요. 처음부터 조사료를 먹여온 것이 유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농장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됐는데, TMR을 급여한 덕분에 사료값에 대한 부담 없이 사양관리를 할 수 있었다. 또한, 농장에서 나오는 축분이 조사료 밭으로 모두 들어가니, 퇴비 처리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배움의 길을 가다  
2010년 발생한 구제역은 음메농장을 피해 갔다. 
“그때 큰아이가 8세 정도였는데, 그 고사리손으로 엄마를 돕겠다며 축사에 따라 나오더라고요. 우리 축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차단방역에 힘을 다했고, 다행히 우리 농장은 구제역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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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구제역이 해제된 후에는 현재의 축사를 지어 이사했다. 
“오래된 축사에서 그때까지 소를 키워 온 것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 힘들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거침없이 밀어붙이며 일한 보람이 있었죠.”
장 대표가 한우농장을 더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고 절감한 것도 이즈음이다.  
“우리 농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지금 한우 가격이 어느 정도이니 출하하면 매출이 얼마 정도 되겠다’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사실 그때까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요. 오로지 한우를 키우는 데만 매달렸으니까요. 배워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렇게 장 대표는 충남 마이스터대학교에 입학했고, 성실하게 그 과정에 임한 결과, 졸업식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졸업 후에는 장 대표가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날’이라고 평가한 그런 기회도 찾아왔다. 마이스터대학교에서 만난 교수님과의 인연으로, 한우 심포지엄에서 ‘국내산 조사료 한우 TMR 적용 육질 경영개선’이란 주제의 강연 발표자로 나선 것이다.
“그때 사례 발표를 준비하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발표할 때, 사람들이 얼마나 진지한 표정으로 또 얼마나 큰 박수로 호응했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한우인이란 자랑스러움
임신우 약 35두로 시작한 한우농장이 어느덧 250두 규모를 자랑하게 됐다. 올해는 새로운 축사를 한 동 더 지어 올렸는데, 취재진이 찾았을 때는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한우농장을 운영해 오면서 좋을 때도 있었고 또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꾸준히 밀고 나가보니 되더라고요.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해 보니 또 그것이 보람이 되더라고요. 이만큼 하니 그만큼 결과도 따라왔어요. 그 노력을 인정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그래서 지금에 와서 다행인 것은 지난 15년동안 한우인이란 직업을 갖고 살아왔다는 거예요. 그 시간은 앞으로 저와 음메농장이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더 큰 행복을 꿈꾸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