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를 찾아서

“휘둘림 없이 굳세게 나만의 길 만들어 갈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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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농장 국창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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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의 뚝심농장 국창화 대표는 20대 중반의 젊은 한우인이다. 아버지가 운영해오던 한우농장을 이어받아 경영해 온 지 어언 2년. 국 대표가 얼마나 촘촘한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성한 틈 없이 부르튼 그의 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 갈 시간이 더 길고 그래서 뭘 해도 할 수 있을 국 대표의 젊음과 뚝심에 응원을 더한다.


한우 운명이 되다
국창화 대표는 한우와 함께 자랐다. 복합영농을 영위하던 국 대표의 아버지 국민수 대표는 한우 한두 마리를 키워오던 중 IMF 외환위기를 기회로 한우 사육두수를 늘렸고, 그것이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잠깐씩 아버지 일손을 돕기는 했지만, 그것이 내 일이 되리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20대가 된 국 대표에게 한우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군 복무 후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전공을 축산 관련으로 바꿨다. “축산을 동경하며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공부해보니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제 적성을 찾은 것입니다.”
국 대표의 첫 직장은 아버지의 ‘국민수농장’. 이곳에서 직접 수정도 하고 그렇게 송아지가 태어나는 감격의 순간을 함께하며, 잘 키워서 출하시킨 일련의 경험은 국 대표에게 보람을 안겼다. 별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한우가 죽어있는 것을 보면서는 답답함도 느꼈고 더 많이 보고 관찰하겠다는 의지도 다졌다. 

 

 

 

아버지란 위대함
“후계농을 준비하고 있다면 먼저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해 보시길 권해요.”
국 대표는 아버지와 함께 일하면서 아버지와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맞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다고 털어놨다. 한우농장 경영 방식부터 사양관리까지 의견이 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평소에도 많지 않았던 부자간 대화는 더욱 줄었고, 농장엔 항상 침묵이 넘쳤다.
이 어색한 관계를 끊은 사람은 역시 아버지였다. “어느 순간 아버지가 제 말을 들어주시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어요. 자연스럽게 한우농장도 저에게 맡기셨고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감사해요. 아직 제가 설익었는데도 기회를 주고 믿어주신 것에 대해서요. 그래서 부담도 컸어요. 아버지의 20년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되겠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이 무거웠습니다.”
이렇게 2017년부터 국 대표는 혼자 한우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농장에서 일하다 보니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말 없는 가축과 일하면서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얼마나 애쓰셨을까. 100%는 아니지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어요.”

 

 

 

초보자의 열정 
홀로서기의 통과의례도 쉽지 않았다. 출발과 함께 구제역 발생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 농장 한우가 구제역에 걸릴까 늘 불안했어요. 다른 농장의 한우가 살처분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고 무섭고 복잡한 심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으로 질병·위생 관리에 더욱 만전을 기하게 됐으니, 출발선에서 얻은 귀한 경험이었다. 
여기에 초심자의 열정도 국 대표를 잡을 뻔했다. “배운대로 공식대로 하려다가 몸이 산산조각 나는 줄 알았습니다.(웃음)” 그러면서 국 대표는 정량급여하겠다며 사료를 일일이 저울에 달아 급여하다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일화를 들려줬다. “지치더라고요. 그러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지혜를 터득했습니다. 오래가야 하는데 벌써 지치면 안 되잖아요.”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른 현실과의 만남에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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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 대표의 FM식 사양관리는 뚝심농장이 체계를 잡는 발로가 됐다. 한우의 성장 단계에 맞춘 사료 구분 급여, 한우 제각 등은 아버지와는 다른 국 대표만의 사양관리법이다. 비육 중심이던 일관사육 농장을 번식우 기반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도 지속했고, 그 결과 지금은 외부 입식이 전혀 이뤄지지 않게 됐다. 앞으로는 한우개량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차근차근 제대로 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 농장만의 한우개량 성과도 나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이야기
국 대표와의 인터뷰를 위해 찾은 농장 곳곳엔 여전히 국 대표 아버지의 손길이 남아 있었다. “이곳은 모든 것이 수동이에요. 제 몸을 안 움직이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시설을 보강하고 무엇보다 질병 관리를 위해 올해는 이곳을 잠시 비울 계획입니다.” 
이 농장과 약 5분 거리에는 2017년부터 짓기 시작한 새로운 축사가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이곳은 새로운 세대인 국 대표의 상징이 될 것이다. 자동화·현대화 시설을 들이고 있는 이 축사는 번식우 기지로 우뚝 설 것이다. “놓치는 것 없이 한 단계 한 단계 나가다 보면 아버지에게 우리 농장이 이만큼 더 성장했다고 보여주며 자랑할 날도 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2019년 국 대표의 일기엔 새로운 세대의 본격적인 성장기가 담길 것이다.  
“농장에 들어왔을 때 아버지께서 남들 말에 휘둘리지 말고 묵묵히 자기경영 방식대로 이끌어 가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버텨나가겠습니다. 뚝심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