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를 찾아서

본격적인 한우농장 운영 ‘인생2막’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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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환 건남축산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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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에서 과수원과 한우농장을 운영하는 건남축산농장 김용환 대표는 약 3년 전부터는 한우농장 운영에 더욱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몇 년간은 복합영농을 영위하겠지만, 결국은 한우농장 운영이 김용환 대표의 ‘인생2막’이 될 것이다. ‘한우를 키우고 싶다’는 그의 오랜 꿈이 본격적으로 실현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늘 오늘 행복했다’는 김용환 대표는 그래서 앞으로는 더욱 ‘늘 오늘 행복할 것’이다.

 


“한우를 키우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지을 소 한두 마리 키우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한우를 키운다는 것이 그때는 쉽지 않았다. 산골짜기까지 사료를 들여오기가 어려웠고, 그러면 꼴을 직접 베어다가 먹여야 하는데 그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결국 젊은 시절 김용환 대표는 한우농가가 아닌 ‘포항제철’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한우를 키우고 싶다’는 꿈을 간직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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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를 키워보겠다.’ 결혼 후 김 대표는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는데,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한우’였다. 언제나 자기 일을 열심히 해내는 김 대표의 뚝심을 잘 아는 김 대표의 아내도 흔쾌히 지지했다. 1988년 김 대표는 드디어 한우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한우농장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여건이 여의치가 않았던 김 대표는 용달차를 운전하고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한우 한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고, 조금씩 조금씩 사육두수를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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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7년 전부터는 용달차 운전과 방앗간 운영을 그만두고 과수원을 시작했는데, 역시 김 대표 옆에는 한우가 있었다. 물론 그 전보다 사육두수는 늘어나 있었다. “IMF 외환위기 때 한우를 40두에서 80두까지 늘렸습니다. 그때 송아지 한 마리 가격이 30만~40만 원 정도였고, 기회라고 생각했죠. 물론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웃음) 그 후에도 몇 번의 파고를 만났지만, 김 대표는 그 파고를 큰 어려움 없이 넘었다. “한우 가격이 내려가도 과수원 운영으로 충당이 되니까, 큰 어려움을 못 느꼈습니다.” 복합영농의 장점이었다. 

 

 

 

인생2막은 한우와 함께
“그동안은 여건이 안 됐는데, 3년 전 축사 신축 허가가 나면서 한우를 본격적으로 키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한우농장은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운영할 수 있으니까, 인생2막은 한우농장과 함께할 것입니다.”
약 17년간 복합영농을 해 오던 김 대표는 3년 전부터는 한우농장에 더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축사를 신축했고, 3년 전 약 70두였던 한우는 현재 270두까지 늘렸다. 지게차 등 한우 관리에 필요한 기자재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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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번식우를 키워온 김 대표는 ‘비육우’로 전환했다. 자가수정을 할 정도로 번식우 사양관리에 대한 노하우도 갖추고 있는 김 대표지만 그동안 번식우를 키워오면서 몇 번의 어려움을 경험한 까닭이다. “아무래도 농사를 지으면서 한우에게 온전하게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앞으로 몇 년은 지금처럼 과수원도 운영할 예정인데, 상대적으로 사양관리가 어렵지 않은 비육우를 선택했습니다.”
비육우 사양관리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김 대표는 전문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직은 알아야 할 것이 많으니까 축협 등의 컨설팅을 받으며 그대로 사양관리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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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사이 김 대표만의 비육우 사양관리 비법도 쌓였다. 김 대표는 축사에 한우가 언제든 먹을 수 있게 볏짚을 깔아 놓고 있었다. “처음부터 사료를 많이 주면 나중에 한우를 출하할 때 즈음 한우가 사료를 먹지 않아 체중을 불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볏짚을 줘서 배통을 키우면 출하 시기가 돼도 한우가 사료를 잘 먹습니다.”
초심자의 열정도 대단하다. 하루 세 번 축사를 꼭 둘러보며 한우의 상태를 살피는 것은 기본이다. 특히 김 대표가 신경 쓰는 것은 축사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인데, 김 대표가 얼마나 열심히 축사를 관리하는지는 뽀송뽀송한 우방에 편히 앉아 있는 한우만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축사 신축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은데, 냄새가 난다고 민원이라도 들어가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축사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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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처럼 뚝심있게
“우리 아저씨는 일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뭐든 열심히 부지런히 하는 사람입니다.”
평생 김 대표를 옆에서 지켜본 김 대표 아내의 말처럼, 김 대표는 평생 성실하게 자기의 길을 걸어왔다. 보통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김 대표의 일과는 저녁 10시가 돼야 마감된다. 지난해 축사를 짓고는 더욱 바빠졌는데, 취재팀이 찾은 날도 김 대표는 한우 83두를 거세하느라 새벽 4시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그럴 예정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젊으니까, (체력과 건강은) 괜찮습니다.”(웃음) 김 대표는 뚝심도 강한 사람이다. 한우 시장을 둘러싼 소문에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묵묵하게 걸어왔다. “장기간 한우를 키울 것이기 때문에 루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금도 여러 가지 소문이 있지만, 그저 한우와 오래오래 이 길을 걸어가고 싶다는 마음뿐입니다. 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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