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를 찾아서

똑똑한 한우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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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 준성농장 고준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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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축사에서 소들의 사료를 챙겨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사료를 잘 먹었는지, 설사는 하지 않았는지, 축사를 돌며 소들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한 뒤, 축사와 물통을 청소한다. 경북 상주에서 한우농장을 운영 중인 고준성 씨의 하루는 다른 한우농가의 모습과 다르지 않겠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손에는 항상 스마트폰이 있다는 것. 그는 수정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등 소를 키우는 데 필요한 정보를 앱을 통해 똑똑하게 활용하고 있다.

 

 

# PC방 사장에서 한우인으로

9년 전 만해도 축사에서 소들과 함께 있는 그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2009년, 한우농장을 운영하던 형님에게 피치 못할 사고가 생겼고, 당장 소를 돌볼 사람이 없어 동생인 그가 갑자기 경북 상주로 오게 되었다.

“운영하던 PC방을 급하게 정리하고 상주로 오게 되었어요. 두려움도 있었지만, 형님이 운영하던 축사가 있어서 남들보다 좋은 조건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좋은 방향으로 생각했었죠. 당시에는 소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몰랐거든요. 소에게 먹을 것만 잘 챙겨주면 되는 줄 알았죠.”

고준성 씨가 도착했을 당시 소는 모두 19마리(거세우 15마리, 암소 4마리). 축산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던 그가 19마리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농장을 맡은 첫해 송아지 4마리가 죽었어요. 송아지가 설사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수의사를 불러서 수액을 놓고 치료를 했지만, 다시 누워버렸고 이틀 후에는 갑자기 죽어버렸죠. 죽어가는 송아지들을 보면서 저 자신이 한심스럽고 바보 같았습니다.”

송아지의 죽음으로 그는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송아지의 죽음 외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 계속되었다. 그는 준비 없이 덜컥 농장 운영을 맡은 일을 후회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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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력이 실력으로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만 없었던 그는 자가치료를 할 실력을 쌓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수의사가 송아지에게 수액을 놓고 치료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뒤 아픈 송아지들의 혈관을 찾아 주사를 놓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수액 놓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한우에 대해 알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이 컸어요. 앞집 사장님이 제 스승입니다. 20년 가까이 한우를 키우시는 사장님은 모르는 게 있을 때마다 잘 알려주세요. 인터넷 모임을 통해서 알게 된 분들의 농장도 종종 견학을 갑니다. 경기도 포천에서 농장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기록관리를 꼼꼼하게 하는 것을 보고 저도 열심히 기록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고준성 씨는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작년에 경북도립대학교 내 한우농민사관학교 한우사양관리과정을 졸업했고, 올해는 대구대학교 마에스터 교육과정 중 친환경한우과정을 듣고있다.

한우인으로써 많은 것이 서툴렀던 그는 이제 정확한 데이터를 통해서 한우를 수정할 만큼 실력을 쌓았다. 한우를 수정할 때 그는 주로 ‘한우계획교배’ 앱을 활용하는데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정보를 얻을 볼 수 있어서 강력하게 추천한다고 말했다.

“앱에 저희 농장의 암소 정보를 입력해 놓으면 수정을 해야 할 때, 최적의 정액을 추천해줍니다. 근친을 피할 수 있고 개량 목표에 맞는 교배를 진행할 수 있게 도와주니깐 좋더라고요. 농장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기록하고 소의 정보를 전산화 하다 보니 질병 관리나 개량을 위한 혈통 관리가 편합니다.”

9년 전, 한우 19마리에서 시작한 고준성 씨는 현재 140마리를 사육할 만큼 성공적으로 한우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힘들었던 9년이었지만, 그만큼 한우에 대한 애정도 커졌다고 말했다.

“지금은 쟤들 키우는 재미로 삽니다. 새끼 받을 때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한우인으로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