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 달맞이 & 천손목장 이재우 대표
감(感)이 아니라 데이터,
한우 농장은 경영이다!
전남 영암군 서호면, 월출산의 너른 자락이 비스듬히 흘러내린 들녘. 달맞이 & 천손목장 이재우 대표는 늘 습관처럼 농장 사무실에 출근하면 컴퓨터부터 켠다. 모니터에는 생산원가 및 생산요소의 최근까지 데이터, 사육일수별 증체 상황, 그리고 연도별 도체중·마블링 지수 결과 데이터가 빼곡했다. “농장은 경영하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하는 이 대표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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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이 내려다보는 들녘, ‘달맞이’가 뜨다
전남 영암군 서호면 ‘달맞이 & 천손목장’으로 향하는 길은 월출산의 능선이 줄곧 동행했다. 차창 밖으로는 봉우리들이 마치 솟구치는 파도처럼 일렁였다. 산이 바람을 막아주고, 물길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나. 영암 들녘의 미질(米質)이 좋은 이유를 따져보자면 월출산이 자리한 배산임수의 기운 때문이 아닐까.
농장 내 사무실에서 마주한 이재우 대표는 슬쩍 창가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말을 꺼냈다. “달맞이라는 이름은 월출산의 우리말이에요. 산이 달을 띄워 올리고, 그 달빛 아래에서 소가 자랍니다.”
그가 운영하는 농장은 두 곳. 본 농장인 달맞이목장은 정밀 개량과 일괄 사육을, 천손목장은 단기 비육 전문이다. 상고사(上古史)에 유독 관심이 높은 그는 ‘하늘의 자손’을 뜻하는 천손이라는 이름을 여기서 따왔다. 그렇기에 한우라는 품종을 향한 그의 자긍심이 묻어 있는 것도 당연했다. 더불어, 포괄 사업 브랜드와 현재 운영 중인 OEM 사료 회사의 이름은 ‘다물’. 옛 땅을 되찾는다는 고구려의 단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정작 “이름값보다 숫자값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책상 위 모니터에는 ‘연도별 지육 kg당 생산원가’ 엑셀 시트가 떠 있었다. 총 매입액부터 총 출하 생체중, 생체중 kg당 원가, 총 출하 도체중, 도체중 kg당 원가 등이 2019년부터 2025년까지 마지막 숫자까지 하나하나 기록돼 있었다. 일반 한우농가의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중소기업 재무팀의 풍경에 가까운,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10살 소년의 꿈, 강단 거쳐 다시 목장으로
이 대표가 축산업을 가슴에 새긴 건 여덟아홉 살 무렵이다. 고향 마을 어느 집에서 쌍둥이 송아지가 태어났다며 잔치를 벌이는 광경을 보았다. 어린 나이에 함께 신이 났던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한우를 키우면 사람들이 저렇게 좋아하는구나.” 마침내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 한우농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안 반대로 농업계 고교 진학은 좌절됐지만 꿈은 휘어졌을 뿐 꺾이지 않았다. 전남대 축산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엔 강의를 하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농장 경영에만 몰두한다. “이제, 제 시간을 오롯이 농장에 집중해 성과를 내고 많은 이에게 농가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줄 차례라 생각했죠.”
아버지의 뜻을 이어 두 자녀도 축산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얼마 전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전했다. “소는 한 마리씩만 낳는 단태(單胎) 동물이잖아요. 인위적 방법 말고 두 마리씩 낳게 할 방법을 아들에게 한번 찾아보라고 했죠. 농장 경영은 실전이에요. 실전에 맞는 답을 스스로 찾게끔 하고 있어요.” 그는 “한우 번식우 사료 시장의 25%만 가져와도 연 100억”이라며 아들에게 한우산업의 기회와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한다.
“불나면 경영장부부터”… 20년 데이터, 두 배의 회전율
이 대표는 노트북을 가리키며 “농장에 불이 나면 저것만 들고 뛰어나올 겁니다”라고 말했다. 노트북에는 20년치의 소중한 경영 데이터가 들어 있다. 매일 일기를 쓰듯 적은 입출금 내역, 대·소분류로 쪼갠 사료비, 생산일지, 감가상각, 직원 급여, 본인 인건비, 그리고 최종 결산인 총자산이익률(ROA)이 줄지어 있다. 이재우 대표는 ‘2024년도 우수 경영기록 경진대회’ 자유기장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한우 사육과 함께 꾸준히 작성해 온 경영기록장을 토대로 경영을 진단하고 가격 하락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온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
“엑셀로 정리하여 데이터의 흐름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숫자의 흐름을 보지 못하면 그건 경영장부가 아니라 그냥 치부책일 뿐입니다.”
양돈에서 빌려온 ‘비생산 월령’ 개념도 적용한다. 비육암소가 마지막 분만 후 출하까지 걸리는 기간으로, 그의 목표는 3개월. 재작년 4.1개월, 작년 5.4개월. 매년 숫자를 들이밀며 자신을 깎아낸다. 입식 유형별(미경산우·임신우·포유우) 수익률, 우시장별 수익률까지 한 줄씩 정렬돼 있다. “이건 대한민국에서 저만 관리하는 자료일 겁니다.”
증체량 데이터는 더 결정적이다. 송아지가 살아남아도 하루 증체량이 370g에 그치면 연 수익률은 4.5%에 불과하다. 반대로 송아지가 폐사했더라도 남은 어미소가 하루 1㎏씩 비육되면 손해는 나지 않는다. 그의 말마따나 결국 생산성이 핵심인 셈이다.
단기 비육 농장은 입식 후 출하까지 평균 190일, 1년에 거의 두 바퀴를 돈다. 보통 농가는 1~1.5회전에 그친다. 같은 10억 원의 운영비로 그는 20억 원어치를 굴리는 셈. “평균 연수익률 21%, ROA로 환산하면 일반 농가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다”라는 그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입 소고기와 맞서려면…” 개량·OEM·자가의 3축
회전율과 함께 이재우 대표는 저비용 생산을 ‘최대의 경영지표’로 꼽는다. “수입 소고기와 가격 경쟁에서 이겨야 한우산업이 항구적으로 순항합니다. 그러려면 결국 생산비를 낮추는 수밖에 없어요.”
그가 그간 실천해 온 방식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20여 년간 도체중 향상 방향으로 꾸준히 개량해 왔다. 한 마리에서 더 많은 고기가 나와야 1㎏당 생산비가 떨어진다는 셈법이다. 둘째, 사료다. 영업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OEM 사료를 급여한다. 그가 운영하는 사료 회사 ‘다물’이 그 통로다. 조사료 역시 볏짚보다 비싼 수입 조사료나 국내산 이탈리안 라이그라스(IRG)에 손대지 않는다.
“비싼 걸 먹여서 좋은 고기가 나온다는 건 환상입니다. 영양 설계가 정확하면 값싼 조사료로 충분합니다.” 셋째, ‘자가(自家)’다. 자가 수정, 자가 치료, 자가 수선. 외주로 빠져나갈 비용은 모두 농장 안에서 해결한다. 30년 전 수정사로 일하며 다져둔 손기술이 지금도 그의 생산비를 잡아준다.
결국 농장주가 농장관리 전반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갖춰 생산비를 절감해야, 수입 소고기와의 가격 경쟁에 대응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이 구조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면 바로 ‘분만 간격’이죠. 시판 KPN 정액의 유효 정자 수가 부족한 게 원인이에요.” 그가 다음 단락에서 정자 수 문제를 끄집어낸 이유다.
“인공호흡기 떼라”…한우산업을 향한 쓴소리
한우 정책을 향한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른 건 정부의 사료 자금 지원이다.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면 남들이 어려울 때가 기회잖아요. 경쟁력이 없는 농가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체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을 살리는 데 더 주력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은 농가가 진짜 축산인으로 더 큰 부를 쌓을 계기가 마련됩니다. 아프다고 계속 인공호흡기를 붙여주니 골골대는 기간만 늘어났어요.”
이어진 비판은 인공수정이다. 한우가 대형화되며 분만 간격이 400일을 넘기는 한계에 부딪혔는데, 국가의 정책제도는 현장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게 그의 진단. “일부 탁상행정 박사들은 정액 스트로우 하나를 10개로 분할해 수정시킨다는 소리를 합니다. 현장은 그게 잘 되지 않아요. 오히려, 2~3그룹 저능력 정액은 기존 1,800만 개 대비 최소 2~3배인 고농축 스트로우를 제작하여 농가의 선택권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어요.”
계산은 명쾌했다. “자연종부로 돌아간다면 지육 1㎏ 생산에서 1,000원가량 단가가 내려갈 걸로 봅니다. 자연종부에 버금가는 수태율을 확보하려면 ‘유효 정충수’를 늘리는 게 필수예요.”
탄소 감축 명분으로 출하 개월 수를 26개월로 단축하자는 정책에도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소 덩치에 맞춰 축사 면적 기준을 넓히고, 면적이 넓어지면 전체 사육두수는 줄어 저탄소가 실현되고, 한 마리당 생산량은 극대화돼 농가 소득은 오히려 늘어난다. 사료법도 필수 아미노산 수준까지 챙기도록 강화해 “사료는 적게 먹고 똥은 적게 싸는” 효율 구조로 가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또 저탄소 명분으로 조단백질 표기를 뺐다면, 소화율과 미네랄·광물질 정보를 병행 표기해야 한다고. 이 대표는 “정부가 일관사육을 장려해 거세비육 위주의 대기업 진출을 일부 제한하고, 한우 사육 기반을 지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쓴소리의 끝에서 그는 후배들로 시선을 돌렸다. “축산학과 나와서 나 혼자 잘 먹고 잘살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주변 사람들과 다 같이 잘 살아야 진짜 모교와 학과를 사랑하는 겁니다.”
5년, 10년 뒤 계획을 묻자 또다시 창밖의 월출산 능선을 응시했다. “남들처럼 1,000마리는 한번 키워보고 싶어요. 마리당 자산수익률(ROA)은 다소 떨어져도, 절대 순이익 규모는 훨씬 커지니까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는 어제도 새벽 두 시간 간격으로 깨어 분만한 어미 소를 살폈다고 했다. 비육우가 옆으로 넘어진 채 3시간을 넘기면 가스가 차고 횡격막이 눌려 고창증으로 질식사한다. 두 마리를 그렇게 잃은 뒤로 잠을 깊이 자본 적이 없다. 최근에는 소가 넘어지면 알람이 울리는 장치가 나와 한시름을 덜었다. “이런 게 비육 농가의 삶의 질을 올리는 진짜 혁신이죠.”
월출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들녘을 굽어보며 그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산이 띄워 올린 달빛 아래, 데이터로 농장을 경영하는 이재우 대표. 모든 수치를 데이터가 증명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