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원주 뜨락농원 이상혁 대표
‘선택과 집중’의 사양 전략으로
효율을 높이다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우와 함께해 온 뜨락농원 이상혁 대표에게 한우는 단순한 생업이 아니다. 삶의 대부분을 함께해 온 동반자이자, 지역 한우산업과 함께 걸어온 시간 그 자체다. 그는 최근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사육 규모는 줄이고 관리의 밀도는 높이며, 보다 효율적인 농장 운영 방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재생 버튼을 눌러 음성으로 들어보세요!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의 굽이진 길을 오르다 보면, 산과 들 사이로 자리한 뜨락농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축사 주변으로는 계절 따라 색을 바꾸는 나무들과 한적한 농촌 풍경이 어우러지고, 우사 안에서는 덩치 큰 한우들이 느긋하게 되새김질을 이어간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시간과는 다른 흐름 속에서 뜨락농원은 사람과 한우가 함께 사는 농장의 풍경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관리 효율과 관심
뜨락농원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한눈에 봐도 체고가 높고 체장이 길며 골격이 큰 한우들이 여유롭게 축사 안에서 뛰노는 모습이다. 이상혁 대표는 현재 51두 규모의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 축사 규모는 총 1,190㎡(약 360평)로, 297.5㎡ 규모 4개 동으로 이뤄져 있다. 많을 때는 250두까지 사육하기도 했지만, 이 대표는 많이 키우기보다는 사육 환경 개선과 좋은 한우만을 집중 관리하는 방향으로 운영 전략을 변경하였다.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이는 단순히 노동 강도를 줄이기 위한 선택만은 아니다. 적정 규모를 유지하면서 한우를 더 세심하게 관리하고, 동시에 개인의 삶에도 여유를 두기 위한 결정이었다. 규모를 줄였음에도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는 비결은 체형 관리에 있다. 일반적으로 육질 중심 개량을 우선시하는 흐름과 달리 이상혁 대표는 우선 한우의 골격과 체형을 충분히 키운 뒤 육질을 관리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실제로 뜨락농원에서 출하되는 한우들은 도체중 평균이 500kg 이상은 기본이다. 특별한 사양관리 비법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특별한 것 없어요. 그냥 한 번 더 보고 관심을 두는 거죠. ‘농작물과 가축은 주인 발소리를 듣고 큰다’라고 하잖아요. 제가 노력하는 만큼 한우도 거기에 보답하더라고요.”
‘특별한 것 없다’라고 하지만, 그의 말과 다르게 축사 곳곳에는 40년 가까이 한우와 함께하며 터득한 노하우가 눈에 띈다. 여러 가지 중에서도 이상혁 대표는 축사의 깔짚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는 편이다. 바닥에 앉았다가 일어났을 때 분뇨가 몸에 묻지 않을 정도의 포슬포슬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로, 직접 눈으로 관찰하며 깔짚의 습도를 25% 정도로 유지한다. 축사에는 저층 구조의 퇴비 처리장도 있다. 축사에서 바로 분뇨를 밀어내기만 하면 되는 구조로 설계되어 분뇨 처리와 청결 유지가 쉽다.
40년을 함께해 온 가족 같은 존재, 한우
이상혁 대표에게 한우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해 온 삶의 동반자이자 가족 같은 존재다. 이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소와 함께 살아왔다. 할아버지 세대부터 집에서는 늘 소를 키웠고, 소 한 마리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시절을 지켜보며 자랐다.
“서울에서 대학교에 다니면서 임업을 전공했어요. 군대까지 제대하고 산림 관련 일을 시작하고자 고향에 돌아왔죠. 근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한우였어요. 옛날에는 소 한 마리가 진짜 집안 살림이었잖아요. 소 키워서 애들 학교 보내고, 가족들 먹여 살리고 그랬으니까요. 한우에 대한 애정이 커지더라고요. 그렇게 1987년부터 한우와 함께하기 시작했죠.”
물론 애정만으로 모든 시작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잘 모르던 시절에는 우시장에서 무시당하기도 했다고 웃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며 직접 부딪혔고, 20두 정도를 입식하면서 본격적으로 한우산업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농장 이름인 ‘뜨락농원’에도 그런 마음이 담겨 있다. ‘뜨락’은 한옥에 있는 ‘뜰’을 의미하는 방언이다. 마루 아래 펼쳐진 뜰은 가족이 함께 생활하고 숨 쉬던 공간이다. 이 대표는 그 단어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정겨움이 좋았다고 한다.
“옛날 집들 보면 다 뜰이 있었잖아요. 가족들이 거기서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고 생활하고. 결국 집안의 모든 일이 그 뜰에서 이뤄졌던 거죠. 그런 정겨운 느낌이 좋아서 ‘뜨락’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결국 가장 작은 공동체가 가족이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서인지 뜨락농원의 분위기는 어딘가 사람 사는 집처럼 편안했다. 이상혁 대표는 소를 단순히 ‘관리 대상’처럼 대하지 않았다. 소의 눈을 이야기하고, 성격을 이야기하고, 편안하게 누워 쉬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다.
원주 한우산업 발전에 힘 쏟다
이상혁 대표의 한우 사랑은 농장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오랜 시간 지역 한우산업의 발전 방향을 고민하며 농가와 소비자 그리고 행정을 연결하는 역할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관리위원, 한우협회 강원 원주지부장, 치악산한우개량연구회장 등을 맡으며 지역 한우산업 발전을 위해 활동해 온 것이다. 특히 2007년 치악산한우브랜드육성사업추진단의 단장을 맡으며 지역 한우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왔다.
“추진단장을 6년 정도 맡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한우를 키우면서 가장 보람됐던 순간 중 하나입니다. 주변 농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소비자들이 믿고 먹을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게 의미가 컸죠.”
당시 한우로 유명한 곳에는 지역 한우 브랜드가 있었지만, 원주에는 없었다. 이상혁 대표는 원주의 지역 농가들과 함께 2007년 ‘치악산한우’ 브랜드를 구축했고, 안정적인 소비 기반 마련에도 힘을 쏟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원주시 초등학교 학교급식 공급 사업이다. 당시만 해도 한우를 학교급식에 공급하는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드물었다. 특히 비선호 부위 소비 확대를 위해 원주시청, 원주교육청, 농협 등과 협력해 지역 내 34개 초등학교에 공급 체계를 구축했고, 현재는 사골과 잡뼈 등 육수용 부위까지 품목을 확대했다.
“학교급식은 아이들이 먹는 거니까 소비자 신뢰를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또 비선호 부위를 안정적으로 소비할 수 있으니 농가에도 도움이 됐고요.”
2010년 구제역 사태 당시에는 원주시 내 구제역 백신 접종 체계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당시 50두 이상 사육 농가는 자가 접종이 원칙이었지만, 이상혁 대표는 고령 농가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해 원주시에 적극적으로 건의했고, 이후 원주시에서는 50두 이상 농가도 시비를 활용해 백신 접종을 100% 지원받도록 체계를 개선했다. 농가들의 예방 접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추진된 이러한 방역 지원 체계는 지금까지도 원주 지역의 방역 기반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우산업의 미래는 ‘한우농가 중심’
오랜 시간 한우산업 현장을 지켜온 이상혁 대표는 앞으로의 한우산업이 맞이할 큰 변화 중 하나로 오는 7월 시행 예정인 「탄소중립에 따른 한우산업 전환 및 지원에 관한 법(한우법)」을 꼽았다. 한우산업만을 위한 독립된 법이 마련된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크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현장을 바라보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법도 중요하죠. 그런데 결국은 누구를 보고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한우농가 중심’이라는 기본적인 원칙을 지켜가면 좋겠습니다.”
이상혁 대표는 농장 운영 계획에 대해서도 말을 이었다. 무리하게 규모를 늘리기보다 한우가 더 편안하게 성장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80~100두 정도 규모를 구상하고 있다. 축사에 많은 개체를 넣기보다는 한우가 충분히 움직이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한우 농장을 활용한 체험이나 캠핑 같은 새로운 시도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단순히 관광 개념이 아니라, 사람들이 한우산업과 생명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밥상에 오르는 한우에 대해 소비자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는 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단순히 ‘먹는 한우고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정성과 시간, 생명의 과정이 담긴 존재로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처럼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우와 함께해 온 이상혁 대표는 규모보다 관리의 밀도를, 기술보다 관심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 왔고, 그의 철학은 뜨락농원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사람과 한우가 모두 행복한 농장을 만들어가는 뜨락농원이 앞으로 어떤 변화와 행보를 보여줄지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