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소고기 나라’였다!
문헌이 전하는 식탁의 일상, 한우가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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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법보다 강했던 한우 사랑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에 한우는 농사에 꼭 필요한 자원이었다. 한우를 보호하기 위해 ‘우금령(牛禁令)’을 수시로 시행해 도축을 엄격히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실은 물론 저잣거리 백성들까지 온 나라가 한우고기의 맛을 즐겼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국가의 엄격한 감시와 처벌에도 불구하고 도축되는 한우의 수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이는 당시 소고기가 사회 전반에 널리 소비되던 대표적인 식재료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제사나 혼례, 잔칫날 등 중요한 날마다 한우고기는 빠질 수 없는 음식이었다. 상차림에 한우고기가 오르지 않으면 격이 떨어진 것으로 여겨질 만큼, 제례와 손님 접대의 정성은 한우고기의 유무로 판단됐다.
선비의 ‘난로회’와 서민의 ‘설렁탕’까지, 일상에 스며든 소울푸드
한우는 특정 계층이나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선비들은 겨울철 화로에 둘러앉아 한우고기를 구워 먹는 모임인 ‘난로회(煖爐會)’로 풍류를 즐겼고, 백성들은 설렁탕으로 기력을 보충했다. 설렁탕은 조선 초기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낸 뒤, 한우를 큰 가마솥에 푹 고아 백성들과 함께 나눠 먹던 ‘선농단탕(先農壇湯)’에서 비롯됐다. 임금부터 평민까지 신분의 구분 없이 함께 음식을 나누었는데 이는 공동체의 따뜻한 식문화를 상징하기도 했다. 결국 한우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삶의 위로이자 사람들을 이어주는 매개라고 할 수 있다.
한우의 다채로운 조리법, K-푸드 열풍을 이끄는 미식 경쟁력
시대를 관통해 온 한우 사랑은 글로벌 시장에서 K-푸드의 경쟁력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 난로회에서 비롯된 구이 문화는 현대적인 미식 경험으로 발전했으며, 설렁탕과 같은 국물 요리는 깊은 풍미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구이, 탕뿐 아니라 찜, 조림, 육회 등 한우의 부위별 특성을 살린 다양한 조리법은 세계 시장에서도 차별화된 미식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이렇듯 한우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식재료를 넘어 전 세계 식탁으로 확장되며, K-푸드의 미식 스펙트럼을 넓히는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올 한 해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는 '한우가 답하다' 캠페인을 통해 우리 민족의 한우 소비문화를 되짚고, 그 중심에 자리해 온 한우의 역사적 가치와 미식의 깊이를 새롭게 조명해 나갈 예정이다.
▲ 조선시대 그림 ‘야연(작자 미상,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선비들이 화로에 둘러앉아 한우고기를 구워 먹는 모임인 ‘난로회’ 풍경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