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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랩소디

▲ 선조들은 소가 오랫동안 사용한 코뚜레에 영적인 힘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인간과 신을 잇는 우리 민족의 ‘수호신’

일반 대중이 중심이 되어 이어져 내려온 민속신앙에서 ‘소’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면, 우리 선조들부터 지금 현대의 후손들까지 내재적인 의식으로 품고 있는 소의 상징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민속신앙 중 십이지신과 한 가정 내에서 행해지는 가정신앙을 통해 우리들의 정신의식에서 나타나는 소의 모습을 되짚어본다.

소의 헌신과 삶을 노래한 이야기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 12가지 동물로 나타나는 십이지신은 애니메이션의 소재로 사용될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전통문화에서 시간과 방위, 띠 등으로 나타나는 십이지신은 땅을 지키는 열두신장(神將)으로서 불교에서는 <약사경>을 외우는 불교인들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고 전해진다.

우리 선조들은 십이지신을 각기 12방위(方位)에 대응하고 동물의 얼굴과 사람 몸의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십이지신은 호국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가 통일신라 이후 단순한 방위신의 성격을 가지게 됐다.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 묘의 십이지신장상부터 조선시대 경복궁 근정전의 석축대까지 우리 선조들은 십이지신을 그림 또는 조각으로 표현해 액운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인식했다.

축신(丑神)은 십이지신 중에서 두 번째 동물, 소로 표현된다. 축신의 시간은 새벽 1시에서 3시, 달(月)로는 음력 12월, 방위로는 북북동쪽에 해당한다. 이 시간과 방위에 소를 배정한 것은 소의 발톱이 2개로 갈라져 음(陰)을 상징하고, 소의 성질이 유순하며 참을성이 많아 마치 씨앗이 땅속에서 싹을 터서 봄을 기다리는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소가 가지고 있는 참고 복종하는 이미지와 연관 지어 찬 기운이 스스로 굴복하기 시작한 것을 상징한다.

불교에서는 축신장(丑神將)을 ‘천수천안보살’의 화신으로 본다. 천수천안보살은 중생들이 갖춰야 할 수많은 눈과 손을 만드는 일을 담당하는데, 천수천안보살이 눈과 손을 잘못 만드는 바람에 속세에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된다. 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천수천안보살은 소의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잠시도 쉬지 않고 중생들이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한다고 한다.

방위신의 축신, 불교에서 축신장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소의 모습은 ‘유순, 인내, 복종, 근면’이다. 이는 현재 대중들이 느끼는 소에 대한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라는 동물이 가진 이미지를 바탕으로,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농경생활의 번영과 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자연현상에 대한 두려움을 친숙한 동물에 투영해 기원과 극복을 이끌어냈다.

 

▲ 소의 얼굴과 사람 몸의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두 번째 십이지신 ‘축신’.(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소의 헌신과 삶을 노래한 이야기

현재는 과거와 주거형태가 달라지고 경제활동의 바탕이 변화해 많이 줄어들었지만, 전통적으로 가정마다 가신(家神)이 집안을 보살펴 준다고 믿고, 이 가신들에게 의례를 올리곤 했다. 가신들은 집안 각 공간을 영역으로 삼아 관장한다고 믿었고 소삼신, 터주신 등 여러 신이 있다고 한다.

가정신앙은 세시풍속과도 연관되어 있다 현재 관점에서는 신앙과 풍속은 다른 관념이지만,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과거에는 인간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연환경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삶(풍속)이 곧 신앙(자연)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밀접했다.

소는 힘이 세고 고집도 세서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이런 소를 순조롭게 잘 다루기 위해 고안한 통제 도구가 소의 코를 뚫어 끼우는 ‘코뚜레’다. 소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세지만 코뚜레를 꿰어 잡아당기면 고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에게 순종하게 되고, 한평생 속박되어 살아간다. 코뚜레는 한 번 채우면 벗어날 수 없는 상징성이 큰 도구여서 대단히 무서운 존재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소가 오랫동안 사용한 코뚜레는 상당한 주력(呪力)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대문이나 집 안에 걸어두고 침범해 올지 모르는 잡귀신이나 악귀를 막는 데 이용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힘센 소가 코뚜레에 꿰어 도망가지 못하고 잡혀 있듯, 집안에 들어온 복이나 부(富)가 코뚜레에 갇혀 다시 나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는 힘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러한 이유로 가정에서는 정초에 나쁜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을 불러들이고자 대문이나 방문 위에 코뚜레를 걸어두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물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통해 자연, 나아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해 배려받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告(고할 고) 자는 소(牛)를 제물로 바치고 신에게 소원을 말한다(口)는 뜻을 합해 ‘알리다, 고하다’를 뜻한다고 한다. 이렇듯 ‘소’는 인간의 마음과 자연을 소통하게 하는 매개체로서 우리 곁을 수천 년 동안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켜줄 것이다.

 

▲ 김유신 장군 묘 주위에서 출토된 십이지상 중 축신장 탁본.(출처: 부산광역시립박물관)

▲ 경북 경주시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시대 청동 축신상.(출처: 국립경주박물관)

▲ 경북 경주시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시대 청동 축신상.(출처: 국립경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