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덕흥리 벽화고분에 그려진 견우직녀도. 견우직녀 설화에서 소는 신묘한 능력을 지닌 은혜로운 존재로 그려진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여 오는
우리 민족의 ‘동반자’
이야기 속에 담긴 한우의 상징
우두커니 서서 꼬리를 휘위휘위 휘둘러서 파리야 달아나거라. 내 꼬리에 맞아 죽지 말아라 하는 모양도 인자하고 (중략) 짐을 지고 가는 모양이 거룩한 애국자가 자기의 몸을 바치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후략)
- 우덕송 中

▲ 경북 상주시 낙동면에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우(義牛)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 글은 소를 다른 동물과 비교하면서 성정이나 외모가 비할 데 없이 사랑스럽고 그 희생이 고맙다며 찬사한 춘원 이광수의 수필이다. 오랜 문화 형성 과정을 소와 함께 해온 우리 민족의 소에 대한 의식은 다양하게 이야기 속에 녹아 있다.
소는 농경시대의 생업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가축으로 자리 잡으며, 우리 문화를 보여주는 문화적 상징이자 꿈과 이상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우리 민족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소는 탐욕과 태만으로 인한 비윤리적 행동을 일깨우는가 하면, 지혜롭고 깨달음을 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는 소를 아끼고 사랑하며 신성시하는 농경사회의 신앙적 요소가 반영된 결과이다. 이러한 소의 상징성으로 인해 많은 이야기에서 소는 신성한 존재로 나타난다.
결국 소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소는 생산력, 중요한 재산, 신성한 동물, 충직함, 내적인 힘 등의 다양한 상징으로 드러난다. 소와 소가 상징하는 의미들은 이야기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며, 소망을 실현하는 매개체이자 윤리적 교훈을 전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이를 통해 볼 때, 이야기 속 소는 우리 선조들에게 인간과 함께하는 친근한 자연의 존재이자 인간에게 귀감을 주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깨달음을 주는 신비로운 존재
우리 선조들은 어려서부터 밭에서 일하는 소를 보며 자랐다. 큰 덩치로 한마디 말없이 묵묵하게 사람의 몇 배나 되는 일을 해내는 소의 모습은 대단하게도 보였을 것이다.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을 해내는 소를 바라보며 선조들은 삶의 조언을 얻고는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견우와 직녀 설화에서도 두 사람의 사랑을 잇는 매개로 등장하는 존재는 바로 소였다. 여기서 소는 견우의 유일한 가족이자 황무지를 삶의 터전으로 일구는 동반자이다. 또 신묘한 능력이 발현되고 말이 트이며 통찰력이 생겨서 아내를 얻도록 조언을 해주는 은혜로운 존재이다.
사람의 삶에 친숙한 존재라는 점에서 소는 익숙한 무언가로부터 깨달음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불교에 전해져 내려오는 심우도(尋牛圖)에는 소를 잃고 찾는 과정을 통해 도를 깨우치는 수행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기서 소의 정체는 진리이며 인간의 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마음의 안정을 잃고 살다가 진리를 깨달은 뒤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소는 본래 거칠고 힘이 세서 다루기가 어렵지만, 잘 길들인 소는 온순하고 우직하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소의 양면성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불교사상에 반영되어 깨달음으로 이끄는 존재가 됐다.

▲ 불교의 심우도에는 잃어버린 소를 찾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가 담겨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중하고 충직한 삶의 동반자
농가에서 소는 기본적으로 큰 재산이자 농사에 활용되는 가축이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생구(生口)’라 불리며 소중한 보살핌을 받기도 했다. 경북 상주시 낙동면에는 호랑이에게 쫓기던 주인을 구하려 싸우다 죽은 충직하고 의로운 소 이야기가 전해 온다. 맹수의 포효와 소란에 놀라 도망갔을 법도 한 상황이었으나, 목숨을 다해 호랑이와 맞서 싸웠던 것은 평소에 소가 학대받지 않았으며 사람과 정을 나누며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농경사회 속에서 삶의 방식에 맞춰 소를 노동에 이용하고 재산으로 여겼으며, 동시에 삶을 함께하는 친구로서 정을 주고 보살피기도 한 것이다.
검정소와 누렁소 중 누가 더 일을 잘하냐는 물음에 농부가 소를 배려해 귀에다 대고 작게 소곤거리며 대답했다는 황희의 유명한 일화에도 교훈을 전하는 소재로 소가 등장한다. 이야기 속의 농부는 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고관대작에게 감히 말대꾸를 한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단순히 소를 일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이 있는 ‘동반자’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준다.

▲ 황희와 관련한 수많은 일화에도 소는 교훈을 전하는 소재로 등장하며, 우리 민족이 소를 어떻게 대했는지 알 수 있다.